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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쏘지 않았어도 ‘박정희 경제 모델’은 망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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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28회 작성일 24-05-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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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의 서울 강남 압구정동. 농부가 밭갈이하는 벌판 저쪽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3년간 강남지역 땅값은 7~8배 뛰었다. 천년의상상 제공

소셜코리아-HERI 공동기획 ⑦


그를 다시 인터뷰한 지 10년 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평등이 주제였다. 굵은 이름을 지닌 경제학자 가운데 그는 드물게 불평등을 붙잡고 살았다. 천생 불평등 경제학자다.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한 길을 내기 위해 때론 이름이 더럽혀지더라도 대학 울타리를 넘어 종종 여의도와 청와대로 향했다. 그는 자신을 ’폴리페서’라 지칭했지만, 기실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소셜코리아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다시 한국의 불평등을 논한다’ 7번째 꼭지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인터뷰를 싣는다. 불평등을 반백 년 연구해온 노학자의 말은 긴가민가하지 않은 채 명료했다. 아쉬움과 여전한 기대, 그리고 분노마저 섞인 대화였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서울 삼각지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이뤄졌다.


―쓰신 책을 쭉 살펴봤는데, 관통하는 주제가 불평등이다. 경제학자로서 불평등에 매달려온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 어릴 때부터 의적 일지매, 홍길동전을 읽으면 가슴이 뛰었다. 울분을 느낀다 할까 통쾌함을 느낀다 할까 그랬다. 그런 반골 기질,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자본주의 하의 분배는 공평한 것이라는 정책적 함축을 갖는”(‘불평등의 경제학’, 2010) 신고전파 경제학에 반감이 컸다. 하여 그 대척점에 섰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결국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미국 하버드대로 방향을 튼다. 나중에 분배 이론의 발전을 자극하게 되는 이른바 ‘자본 논쟁’(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MIT 사이 논쟁으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자본 개념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을 주제로 논문을 쓰려 했다가 분배로 바꾸게 된다.

“뭘 할지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별로 안 하는 걸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분배'를 떠올렸다. 왜냐하면 ‘자본 논쟁’의 내용이 자본이론, 성장이론, 가치론, 분배론이 종합된 거였기 때문이다. 특히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생산력설’(생산에 참여하는 각 생산요소는 그것이 한계적으로 총생산에 기여한 몫만큼 분배를 받게 된다는 이론)을 비판하는 게 분배이론이다. 분배가 중요한데 그동안 잊혀 있었으니까, 이 그늘진 분야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득 분배론’을 펴낸 지 33년, 이 책의 증보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의 경제학’을 펴낸 지 14년이 지난 지금, 그토록 바꾸고 싶어했던 '성장 지상주의 매몰' 풍조가 개선되었다고 보는가.

“많이는 안 바뀌었지만, 지금은 분배 이야기를 해도 좀 더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분배 이야기를 하면 좌파라는 인식이 있었다. 심지어 은사인 조순 선생님(전 한국은행 총재이자, 전 서울대 교수)은 나를 굉장히 아끼고 많이 밀어준 지도교수이기도 한데 내가 자꾸 청와대(노무현 정부 때)에서 분배 이야기를 하니까 앞으로 하지 말라고 지적도 하고 그랬다.

2014년에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가 나오면서 '분배가 잘 돼야 성장이 잘 된다'는 게 정설이 되었다. 국민의힘이나 ’조·중·동’이 분배에 대해 잘 모르고 상투적으로 비난해온 것이다. 다보스 포럼, IMF,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불평등을 걱정하고,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천지개벽이 된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만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한심하다.”

―여전히 불평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적은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분배가 전공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통 경제학 분야에 분배가 들어가지 않다 보니 취직하기가 어렵다. 관심은 있어도 감히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리카르도가 경제학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분배라고 지적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계급론도 다 분배이론인 셈인데, 정통파 경제학에서는 한계생산력설로 그런 것을 다 깔아뭉개고 ‘모든 분배가 공정하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분배 문제가 잊힌 분야가 된 것이다.

앞서 말한 자본논쟁에서 그런 걸 부활시키려 했으나 흐지부지 끝났다. 영국 포스트 케인지언이 이겼는데 신고전파가 워낙 현실적인 권력(노벨상 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지금 노벨경제학상은 시카고학파가 거의 다 가져간다. 그 사람들이 심사위원이 돼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자꾸 뽑는다. 케인지언을 거의 뽑지 않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정도가 가물에 콩 나듯 나왔다. 시장 만능주의자들만 노벨상을 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경제학상의 폐해가 크기 때문에 폐지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을 너무 편향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

―불평등을 연구하는 주류 경제학자가 없거나 드문 것이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 한국 사회에서도 성장 지상주의, 박정희식 개발주의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며 사람들을 세뇌해왔다. 지금도 대구에 홍준표 시장이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아무런 토론 없이 개인 생각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구시의회에 갑자기 조례를 제출하고 예산도 배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저께 그 반대운동을 하는 시위에 나가 한마디 하고 왔다.

성장 지상주의,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한국 사회를 후진적, 편향적으로 만들고 보수화시키고 있다. 거기에 더해 전반적으로 경제학계의 보수화가 문제가 된다. 중도학파도 인정을 못 받고 완전히 우파적인 시장 만능주의가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현실 권력도 그렇고 경제학계의 권력도 그렇고, 젊은 연구자가 이중의 벽을 뚫고 헤쳐나가기 참 어려운 구조다.”

―박정희식 개발주의가 한국 사회의 후진성, 퇴행성을 강화했다는 부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거 같다.

“파쇼 경제가 초기에는 고성장한다. 문제는 오래 못 간다는 점이다. 필연적으로 주저앉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없어서다. 명령과 강제에 의한 동원체제다. 그렇게 하면 양적 성장은 성공하지만, 질적 성장이 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힌다.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토론이 필요한데, (파쇼 모델은) 이걸 방해한다. 박정희식 고성장은 그게 한계다. 박정희가 오래 살았더라도 경제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것은 정의감과 애국심에서였지만, 차라리 안 죽였더라면 ’박정희 모델’은 저절로 망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예 박정희 향수를 갖지 않고 철저히 극복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일부 있다.

죽은 지가 40~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동상,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상숭배를 깨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

―교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사상, 신념을 현실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려고 노력한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분인 거 같다.

“‘폴리페서’(Polifessor)다. 그런데 나는 폴리페서를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우리말로 하면 폴리페서는 사대부(士大夫)다. 사대부가 조선왕조를 지킨 최후의 보루였다. 폴 사무엘슨이나 밀턴 프리드먼은 다 폴리페서다. 둘 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워싱턴에 가서 자문하고 그랬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 자문을 했다. 넓은 의미의 불평등, 분배 정책을 꾀하고 시도 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 하나를 꼽는다면?

“ 참여 정부 인수위 때 한 기자로부터 ‘혹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세 가지로 답했다. 노사 문제, 입시 지옥,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그 뒤로 정말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 종부세 도입은 거의 전적으로 나의 작품이라 해도 좋다. 그 뒤에 많이 사람들이 종부세를 후퇴시키고 왜곡시킨 것이 아쉽다. 내가 부동산 정책에서 밀려나는 과정은 ’한겨레’에 연재한 ‘참여정부 천일야화’에 써놨다. 내가 밀려나지 않았다면 부동산 문제를 잡았을 것이고 다음 대선도 잃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부동산은 시장의 신뢰 게임이다. 그런데 신뢰가 흔들리니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김종인 박사가 ‘부동산은 무슨 수를 써도 못 잡는다’는 주장을 계속한다. 그건 틀렸다. ‘그럼 당신은 무엇으로 잡을 거냐?’ 라고 물으면 답을 못할 거다. 보유세로 잡아야 한다. 보유세 없이는 부동산 투기를 못 잡는다. (보유세가) 충분조건은 못 되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그의 진한 아쉬움과 확신은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2022년 대선 때 이재명을 좀 도왔다. 2017년 대선 때는 돕지 않았는데, 당시 이낙연-임종석-장하성 체제로 간 문재인 정부의 첫 인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굉장히 안타깝다.

최근 총선에서는 새진보연합의 국가혁신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선거에서 총 세 번을 도운 셈이다. 도우면서 느낀 것은 민주당조차 진보성, 개혁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조용히 가면 승리다’. 이런 생각에서 분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부동산, 종부세는 표가 날아갈 걱정에 이야기하지 않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부지기수다. 열린우리당도 실패, 민주당이 180석을 갖고도 실패하는 이유가 지나친 몸조심 때문이다. 이게 노무현과의 차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개혁을 망설인다. 표 잃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다. 민주당과 ’친노’ 중에는 과단성이 없는 신중파, 소극파가 너무 많다.”

―불평등과 종부세의 관계를 조금 더 언급해준다면?

“ 우리나라는 소득분배 문제점도 있지만, 노동 대 자본 간 분배도 중요하다. 노동 내부의 불평등(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다른 나라보다 극심하다. 세계에서 제일 불평등하다. 그다음에 자산으로 넘어가면, 자산 불평등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가구 자산은 70~80%가 부동산이다. 다른 나라는 금융자산 위주인데 우리나라는 부동산 위주다. 그런 기조를 만든 박정희의 죄과가 크다. 박정희의 공이 1~2 정도이고 과가 8~9 정도라고 본다. 사실 1도 마지못해서 말하는 것이고, 1도 주기 싫다. 엄밀하게 따지면 성장은 우리 국민, 노동자, 농민이 피땀 흘려서 이룬 성과다.

그 문제(자산 불평등)를 해결하는 근본이자 최종 정책이 보유세다. 보유세를 과거 정부가 늘려야 한다고 말만 하고 부자, 권력층의 눈치만 보고 실천을 안 했다. 그걸 처음으로 개혁한 게 종부세다. 종부세가 국회를 통과하던 날 나는 부동산 정책에서 밀려나 있었다. 내가 종부세를 도입하려고 고생했던 것을 잘 아는 한 기자가 그때 전화를 해와 소감을 물었다. 그래서 ‘역사적 쾌거’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은 종부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중요한 이정표다. 물론, 종부세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데 종부세 개혁도 눈치 보면서 좌고우면하다 국민 신뢰를 잃고 정책을 망쳤다.”

―크게 보람을 느낀 정책은 어떤 건가?

“청와대에서 2년 반 동안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정책은 3가지다. 자랑이라 해도 좋은데, 종부세와 근로장려세제(EITC, 근로장려금),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 AA)였다.

근로장려세제는 인수위 때부터 제안했다. 재경부(현 기획재정부)에서 무척 반대가 심했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해냈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정책이라고 인정한다. 또 남녀에게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 인수위 때부터 AA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한국형 AA 제도는 여성 채용 비율이 낮은 기업의 정부조달 계약(입찰) 시 감점을 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기업의 무시 못 할 큰 고객이기에 가능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재계의 민원으로 AA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반대로 미국에서는 재계의 요청으로 1965년 AA를 도입했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한국의 재계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안목이 없는지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 교수님께서 보시는 한국의 불평등 수준은 어떤가?

“소득 불평등 지표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의 몫이 국제 비교를 해봐도 굉장히 낮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차별이 매우 크다. 아주 심각한 고질병을 앓고 있다. 세계 최악이다. 인간을 차별하는 거는 미국의 남북 전쟁 이전의 흑백 문제하고 비슷하다. 그 정도로 심각하고 전근대적,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게 있을 수 있나? 타파해야 한다. 그 방법 역시도 AA를 사용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얼마나 쓰고, 그 둘 사이의 임금 차별도 봐야 한다. 이게 나쁘면 정부와 계약을 못 맺게 된다. 이건 내 지도교수인 리처드 프리먼(하버드대 석좌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 교수는 박정희 때 청와대가 앞장서 땅값을 올리고 투기했다고 분노했다. 그의 입에서 ‘박정희는 용서가 안 된다’는 말도 나왔다. 박정희가 사전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한 동대구역에 그의 동상을 세우려는 계획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결정적으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악화했다고 보는가?

“’IMF 사태’(외환위기)다. 1998년 IMF 사태 이후로 불평등이 확 치솟는다. 앞서 1995년이 변곡점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것도 일리가 있다. 95년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 임금 격차나 불평등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을 능가하는 게 IMF 사태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도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3%를 넘지 않았는데 IMF 당시에는 실업률이 8%가 됐다. 실업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이때부터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많아졌다. 계약직, 기간제 등 손쉽게 헐값에 사람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을 성냥개비 쓰듯이 하는 채용방식이 성행한 데에 IMF 사태가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의 불평등은 IMF 전과 후로 갈라진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가장 큰 부정적 영향은 뭔가?

“ 불평등이 심하니까 서민들은 호주머니가 텅텅 비고 부자들은 돈이 남아도는데, 그 돈을 부동산이나 이런 데에 잠가놨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거다. 경기침체와 저성장, 양극화가 동행하는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성장, 분배, 고용이 모두 나쁘다. 이걸 살리는 방법에서 결국 분배의 개선이 1번 타자이다. 2번 타자가 성장이고, 3번 타자인 고용은 맨 끝에 따라올 거라는 게 내 가설이다. 분배를 개선해야 저소득층, 저임금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온다. 그러면 성장-고용-분배의 3박자가 다 잘 돌아가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수 정부는 분배 개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좌파적인 생각이라고 배척한다.

앞서 말한 게 미국에서 성공한 뉴딜 정책이다. 뉴딜의 취지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이다. 강자는 억제하고 약자를 돕는다. 세금과 정부 지출을 통해 분배와 재분배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면 성장이 살아나고 고용이 좋아지면서 한국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이게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이다. 그런데 이게 엄청 욕을 먹고 틀린 것인 양 매도당하는 현실이 아쉽다. 그건 최저임금 개선에 지나치게 주력해서 그렇다. 그건 잘못됐다. 최저임금은 조금 덜 올리면서 다른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해 포용적 성장, 소득주도 성장으로 갔으면 성공했을 것이다.

조순 선생님이 분배를 이야기하지 말라고 지적한 20년 뒤에 소득주도 성장이 틀렸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둘 다 동의하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가 2012년 10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시민캠프 사무실에서 경제민주화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위원장을 맡은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임기 2년밖에 안 된 정부를 평가하기 이른 면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불평등 정책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 답안지에 적어낸 게 없어서 채점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학자 중심으로 토론하는 것 같긴 한데, 그 부분이 아직 미지수인 것 빼고는 평가할 것이 없다. 연금개혁을 해내면 하나의 업적이 될 수 있겠다. 윤석열이 가장 존경하는 경제학자가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러다 보니 취임사에 자유란 말이 35번이나 등장했다. 그게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건 1970~80년대 케인스주의의 폐단이 심했을 때 그걸 지적하면서 나온 이론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나서 그 책(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을 들먹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정부 차원의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필요한 사회적 노력에는 어떤 게 있을까?

“ 아까 이야기한 부동산, 노사, 교육 문제 이런 거다. 지금 교육 문제가 점점 악화하여 일류 대학은 부잣집 아이들이 다 차지한다. 시골 아이들이나 가난한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점점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그런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고, 부동산도 전혀 해결할 의지가 없다. 노조 문제는 아예 노조를 적으로, 기득권 카르텔로 보고 있으니 암담하다. 3년(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을 어떻게 기다리나 한숨만 나온다.”

―부동산은 침체기다. 현 정부는 거꾸로 부동산을 부양시키려고 한다. 재건축 규제도 완화하고 있다.

“ 아주 잘못된 방향이다. 이미 공급은 충분하다. 대구를 와서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대구가 크게 망해가고 있다. 대구 시내에 재개발, 재건축하는 곳이 200곳이 넘는다. 대구 온 동네에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서 시내 전체가 시멘트 도시가 되고 있다. 분양은 안 되고 팔리지 않는다. 그럼 곧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할 텐데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다. 토건국가 최후의 발악을 보는 것 같다. 마구잡이로 개발만 하면 오케이(좋다)라는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최후 종착지가 대구인 것 같다. 한심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35년이 넘었다. 얼마 전에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더니 쑥 들어갔다. 왜? 안 팔리니까 그렇다. 공급 과잉이다.”


―부동산이 자산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인데, 부동산 문제의 출구가 안 보이는 것 같다.

“답은 있다. (답을 얘기하는) 헨리 조지 주의자들이 몇 명 있다. 보유세 강화, 양도세 개편, 토지공개념 선언, 공직자들에 대한 부동산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을 포함하는 정답 패키지가 나와 있다. 공급 증가는 답이 아니다. 그런데도 채택을 안 하는 게 문제다. 수십 년째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외치고 있는데 이를 실현할 의지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아예 의지가 없고, 민주당도 이런 거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를 취하고 있다. 두 거대 정당 가지고는 무언가를 바꿀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진보적인 정당이 필요할 것 같아 (지난 4.10 총선 때) 새진보연합을 도왔다.”

―사람들이 너무 급진적으로 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있다. 남들이 버는 걸 보고 자기도 좀 벌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고, 비싼 아파트 하나 사서 갖고 싶은 게 로망이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냉정함을 되찾고 욕심을 버리고 투기가 없는 정상적인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오래전 경남 양산 가톨릭 묘지에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겠는데 낡은 나무 팻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거라.’ 이처럼 토지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바탕이고 인간이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 땅이라는 철학을 우리 국민이 가져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

“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다. 그래야 경제성장, 일자리 확대가 가능해진다. 이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겁을 내는 게 안타깝다. 이걸 바꾸려면 결국은 정치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대 정당이 바뀌어야 한다. 제3당이 좀 커질 필요가 있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민주당은 좀 더 과감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너무 지나친 박정희, 이승만 숭배를 벗어나야 한다. 그다음에 대화와 개혁이 가능하다. 경제도 중요하고, 불평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다.”

인터뷰가 끝나고 늦은 점심으로 생태탕 한 냄비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꼿꼿한 선비의 결기를 드러내던 그는 식당에서 소박한 자신의 속을 내비쳤다.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좋은 게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대학 주차장에 공짜로 차를 세울 수 있어서란다. 이번 인터뷰가 한국 ’분배 경제학’의 산 증인인 그의 오랜 바람처럼 “한국의 불평등 논의의 발전과 해법 발견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서문 중)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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