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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적’ 조봉암 사법살인…윤 정부 과거사위원장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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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3-01-1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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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조봉암(1898~1959)


한때 공산당에 몸담았다. 러시아와 중국을 다니며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박헌영과 척을 지고 당 활동을 그만뒀다. 역사학자 서중석은 그를 두고 “탁월한 대중 정치가”였고 “개인성향에서도… 공산당의 조직 생활에는 안 맞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죽산 조봉암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흑백논리로 잘라 말하기 힘든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1948년 5·10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남북 분단을 초래한다며 좌익과 중도파가 보이콧했던 선거였다. 조봉암은 이승만 정부에 입각해 농림부 장관을 맡아 농지개혁을 주도했다. “이렇게 정치적 곡예를 하면서도 변질되지 않았고 자신의 주장은 강력하게 폈다.”(서중석)
전쟁 막바지부터 이승만에게 도전했다. 1952년 대통령 선거 때 이승만과 겨뤄 2등을 했다. 이때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다. 선거 사무차장을 맡았던 김성주가 1953년에 붙들려가 고문당해 숨진 일도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또 2등을 했다. 개표 부정이 심각한 선거인데도 그랬다. 이승만의 경쟁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승만의 미움을 샀다.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이승만 정부가 북진통일을 선동하던 시대에 평화통일을 주장했다. 진보당은 “피압박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세력의 전위”로 자처했다. 1958년 1월12일 진보당 간부들이 체포됐고, 이튿날 조봉암이 자진 출두했다.
“벌써 조치됐어야 할 인물이다.” 이승만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1심 판결에서 5년 형이 나왔다. 핵심 혐의인 간첩 혐의는 무죄였다. 우익 청년들이 들고일어나 사법부를 압박했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고, 1959년 7월31일 교수형이 집행됐다. 사형 집행 직전 “나는 이(승만) 박사와 싸우다 졌다, 승자로부터 패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보복에 따른 사법살인이라는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재심이 진행됐고, 2011년 1월20일 대법원은 조봉암에게 간첩 혐의 무죄 판결을 내렸다. 52년 만의 신원이었다. 그런데도 조봉암이 간첩이라 주장하는 극우 논객이 가끔 있다. 2015년의 김광동이 대표적이다. 그 김광동이 2022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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